영화

라면에 담긴 사랑법

차오롱 2007. 1. 26. 15:04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두 주인공의 사랑의 촉발제는 라면이었다. "라면 먹고 갈래요?" 라는 은수의 말 한마디로 인해 그들의 사랑이 시작된다. 나이와 연륜으로 연애의 권력에서 우위를 선점한 은수의 무기가 다름아닌 라면이었다니, 함께 영화를 봤던 친구와 키득거리며 누군지 이 시나리오를 쓴 사람은 제대로 연애를 해본 사람인게야. 라며 그 작가의 대한 귀여운 발상에 무한한 공감과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몇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녀 사이의 어록에 "라면 먹고 갈래?"는 중요한 입지로 남게되었다. 하지만 이미 매체를 통해 공개된 비법이니 만큼 메뉴는 좀 바뀌어야 민망함이 덜하지 않을까. 그런데 말이지, 스파게티 먹고 갈래? 김치찌개 먹고 갈래? 아 이건 좀 아니란 말이지.

어제 봤던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에서도 라면은 이제막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의 아이템이다. 배두나가 늦은 밤 전화 통화중에 "나 라면먹고 싶단 말이야." 라고 이야기를 하자 남자는 "라면 먹으면 얼굴 부어. 그냥 자." 라고 이야기 한다. 물론 영화이므로(!) 남자 주인공은 라면을 먹고 싶다며 칭얼거리는 연인을 그냥 두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고 편의점에서 라면을 사서 언덕 넘고 골목을 구비구비. 결국 씬은 바뀌고 그녀의 집 앞에서 코펠에 라면을 끓이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오바라고 본다. 그래서 간만에 혼자 영화보면서 박수치며 웃었다. 많은 남자들이 연인과 그 영화를 보면서 얼마나 난감했을까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난다. 아마도 김남진 그 영화 찍고 남자들에게 미친놈 소리 꽤 들었을것 같다. 그래도 여자 입장에서 보자면 어찌나 이쁘고 기특한지. 아 그리고 이 영화속의 김남진이 바로 내 스타일이다. 겉은 어리숙하고 바보스럽지만 꿈을 가지고 있고 그걸 만들어가는 스타일. 꿈이 없는 남자가 얼마나 여자를 힘들어 하는지 그들은 모를거다. 게다가 아주 개인적인 경험일 수 있겠지만, 많은 남자들이 꿈을 대단하고 거창한 야망으로 이해 혹은 오해하기도 하더라고.

"라면 먹고 갈래?" 라고 작업을 걸건 "라면 먹고 싶단 말이야!" 앙탈을 부리건, 또다른 창의적인 어록을 만들어내건. 앞으로도 라면은 많은 연인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될거다. 그리고 나는 라면이 몸에 해로운 건 알지만 그와 별개로 라면을 좋아한다. 으아, 아침 나절부터 라면이 먹고 싶으니 이 일을 어째.

2004. 09.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