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WOFFIS]빨간 나비

차오롱 2007. 1. 26. 14:40
정확히 사춘기가 언제였던지 명확한 구분이 힘들지만 나도 그 시절을 지나왔다. 엄마를 너무 사랑하면서도 그 마음이 어긋나 엄마가 죽도록 미웠던 때가 있었다. 매일 붙어다니며 세상의 비밀을 공유하던 친구와 절교 선언도 해봤다. 영화 속 주인공 소녀처럼, 나도 저랬던 적이 있다. 빨간 큐빅이 촘촘히 박힌 나비 모양의 머리핀을 매개로 그녀들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영화는 어려운 환경의 편모 슬하에서 성장하는 한 고등학교 소녀의 이야기다. 엄마는 '더러운' 모텔에 청소부고, 단짝 친구는 학교 선생님과의 원조 교제로 그 여관을 들락거린다. 단짝 친구가 머리에 꽂고 다니던 머리핀을 어느날 저녁 밥상에서 내미는 엄마. 딸은 그 머리핀을 꽂고 학교에 간다. 어찌어찌 단짝 친구였던 그녀들은 화해를 하고, 딸은 그토록 못마땅했던 엄마의 직장(모텔)을 찾아가 경쾌하고 밝은 목소리로 엄마를 부른다. "엄마!"

내게 절교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게 해줬던 단짝 친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그녀는 결혼을 했고 아이도 있다. 가끔 그녀와 전화를 통화를 하고 아주 가끔 만나서 밥을 먹기도 한다. 그 시절 '애증'의 감정을 실랄하게 경험하게 해준 엄마는 어쩌면 내게 있어 평생의 숙제다. 분명한 건 그 때 보다는 지금 엄마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앞으로 살면서 점점 더 그럴거라는 확신이 든다. 나도 여자니까. 사춘기 시절 지극히 남편 의존적인 삶을 살았던 엄마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어느 날 나는 엄마에게 폭탄 선언을 했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거야." 엄마가 그렇게 놀라는 표정은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보지 못했다. 그 때 나의 독설에 대한 엄마의 대답은 이거였다. "너도 살아봐. 인생이란게 마음 먹은대로 살아지는게 아니야." 엄마가 떠나기 일년 전 쯤에 고향에 내려가 맥주 잔을 앞에 두고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난 너가 내 딸이라서가 아니라 여자로 맘에 들어. 자식에 대한 사랑은 대부분 짝사랑이지만 너는 특히 더 그래. 넌 멋지게 잘 살고 있는거야. 너가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살아. 나처럼 살지 말고." 엄마는 모든 걸 자식과 남편에게 희생한 전근대적인 여성상의 표본이었다. 내 알기론 아직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그렇다. 내가 결혼과 출산에 대해 아직도 확고한 의지를 세우지 못하는 이유이다. 엄마와 달리 살 자신이 없거든. 엄마 생각이 많이 나서 살짝 울었다. 어쩌면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은 평생의 짐이 될런지도.

여성 영화제의 좋은 점은 여자이기에 더 절절하게 느낄 수 있는 영화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잊고 있던 기억들을 찾기도 하고 그저 쉽게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주워 담는다. 정성의 부족으로 모든 감상을 부지런히 올리지는 못하지만 대개의 영화들이 의미있게 다가왔다. 그래서 주위의 남자들을 영화제 관객으로 끌어들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영화제 단편 경선작 경쟁부문 1. 함께 영화를 봤던 동생은 '가리베가스'를 찍었다 한다. 4편의 단편 영화중 완성도나 작품성에서는 단연코 '가리베가스'가 우세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평론가가 아니라 관객.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개인적 체험 아니겠나. 나의 사춘기 시절을 다시 되돌려준 '빨간 나비'에게 한 표를 던진 이유다.

2005. 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