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 극단 미추 홈페이지
"나는 하느님한테 용서를 구하지 않아. 사람들...당신한테 용서를 구할 뿐이지. 용서해줘."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아직도 커다란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있는 엄마에게 딸이 묻는다. 어땠어? 이젠 아빠를 용서할 수 있을것 같아? 아니. 그녀의 음성은 낮고 대답은 단호하다. 딸은 깔깔깔 웃는다. 엄마도 베시시 웃는다. 그럼 되었다. 세상의 사랑이 모두 같은 모양일 수 없다면 그저 이 순간 웃을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모녀는 행복할테니. 살다보면 도무지 이것이 나의 현실이라 인정하기 싫은 끔찍한 상황에 처하기도 하지만 또 가끔은 그러한 상처를 감쪽같이 봉합하는 마법같은 일들도 생긴다. 때론 희망이 잔인한 것이라 믿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벽장 속 요정의 기적을 지켜보며 나는 아직 더 많은 희망을 믿어야 하는 의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연극속 그녀가 노래한것 처럼 살아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니까.
벽속의 요정은 김성녀씨의 뮤지컬 모노 드라마다. 그녀가 무대에 올랐던 연극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그녀를 위해 기립 박수를 보냈던 건 오늘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사실 연극을 보며 놀라고 긴장하던 것이 무대 위를 뜨겁게 달구던 그녀의 아슬아슬한 열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무대 위 수많은 배역으로 바꿔가며 무대 밖으로 손을 내밀었을 때, 너무나도 적극적이며 따뜻하게 그녀를 잡아주는 관객들. 그들이야말로 내겐 대단한 구경거리이며 자극이었다. 연극을 보는 내내 북받치는 감정을 자제하는 것이 문득 부끄럽다는 자각, 때문에 나는 벌떡 일어나 그들 모두에게 기립박수를 보내야 했다. 50年生 대단한 언니 김성녀의 재발견. 멋쟁이 극작가 배삼식의 새로운 발견. 그리고 기왕이면 벽속의 요정도 함께 발견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