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전 봄인가 가을의 일이다. 친구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원고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도무지 풀리지 않는다며 잠적할테니 그리 알고 있으란다. 알리고 가는게 무슨 잠적이고 거기가 어딘지 알리기나 해봐라. 혹여 행불이라도 되면 마지막 통화하는 이가 내가 되어 알고 있어야지 않겠냐 했더니 재수없는 소리 말라며 전화를 휙 끊었다. 그리고 다시 전화. 소봉아 거기 어떻게 가지? 거기가 어디야. 거기 있잖아. 홍감독 해변의 여인에 나오는 서해안 바닷가. 신머시기인데. 몰라? 몰라. 나 아직 그 영화 안봤는데. 그래? 니는 그 영화도 안보고 머했냐. 언능 챙겨 봐라. 꼭 봐줘야 한다. 그래 알겠어. 만약 당신이 서울로 안돌아오면 그때 영화보고 그리로 찾아갈게. 응 안녕. 물론 그녀는 돌아왔다. 그것도 하룬가 이틀만에. 그리하여 나는 해변의 여인을 볼 수 있는 기회를 한참 놓쳐버렸다. 그리고 해가 지나갔다. 황사가 심한 주말 문득 해변의 여인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하게 홍감독 영화는 묵혀서 보게되는것 같다. 단 한번도 극장에 가서 돈주고 본 적이 없다. 다음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겠다. 이젠 그래도 될 것 같다.
주변 사람들 중에 더러 홍감독의 영화를 불편해 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나 남자들에겐 그의 영화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크리티칼'한 부분을 건드려 거세시키는 힘이 있다는 이야길 들었다. 신기하게도 해변의 여인에 중래의 대사 속에 자주 등장하는 '크리티칼'이란 말이 자꾸 귀에 밟힌다. 어쩌면 정말루 감독의 의도하에 크리티칼한 부분을 건드려 거세하고 해탈하고픈 것일런지도. 그러나 여전히 홍감독의 영화는 재밌다. 차마 말로 풀어놓기 껄쩍지근한 트라우마를 어떤 식으로든 툭 까고 이야기하게 만드는 힘, 그리고 그것은 재미로 다가온다. 결국 나의 일상도 다르지 않거든. 내 삶에 영향력을 미치고 상처주고 결국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멀리 있는게 아니라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는 것. 생판 모르는 남 보다는 가까운 친구에게 애인을 빼앗길 확률이 크다는 것. 누군가에게 굳이 인생에 가장 피하고픈 미덕이 집착이라 말한다는 건 결국 스스로가 거추장스런 집착을 잡고 있거나 혹은 누군가의 집착으로 호되게 고생 해보았거나. 그리고 남자가 다 괜찮으니 과거를 고백하라는 건 개뻥이라는거.(흣) 결국 한 인간의 인생이 대단히 복잡하고 다양해봤자 드러나는건 빤하고 그래서 재밌다. 고현정과 문숙, 김상우와 종래의 캐릭터가 어찌나 딱이든지 덕분에 더 낄낄거렸네. 올 봄이 가기 전에 신두리에 한 번 다녀와야지. 그리고 당연히 오늘 저녁엔 회에 소주를 먹어줄 생각이다.